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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시민 밖에 없는가?

부용산 2009. 3. 31. 12:36

유시민 밖에 없는가?

 

 

영국의 비평가 레이몬드는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를 여섯가지로 분석하였습니다.
그가 쓰고 있는 용어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자유롭게 바꾸어 풀이해보자면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시민(member), 백성(subject), 하수인(servant), 체제도전자(rebel), 망명자(exile), 떠돌이(vagrant)등으로 요약될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주인의 역활을 하는 시민은 사회에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이 곧 자신의 규범과 가치인것으로 체험하며 사회에서 일어난 모든일에 소외되지 않는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백성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스스로의 뜻에 관계없이 사회가 부과한 위치와 역활을 감수할수 밖에 없음으로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며 아무리 싫어도 사회의 요구에 복종할수밖에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수인은 백성과는 달리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백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방식을 싫으나 좋으나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다만, 하수인의 경우는 백성처럼 압박이나 긴장이 그다지 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꺼히 주어진 조건에 동화해 들어갈수 있으며 때때로 이 사회에 자신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망상에 빠지고는 하는데, 이러한 망상이 그로하여금 자신이 하는일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것이라는 환상을 유지시켜준다고 합니다.

 

체제도전자는 일정한 보편적 가치에 의거한 사회의 운용이 자신의 개인적인 성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신봉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시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발견할 때, 그는 바람직한 새로운 사회질서의 건설을 위해 주어진 사회질서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사회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일과는 역행되는 원리로 운용될 때, 주인 역활을 하는 시민이 흔히 체제도전자로 변모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자에게는 두가지의 유형이 있습니다. 즉, 혁명가와 개혁주의자(혹은 비판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망명자는 주어진 사회 조건의 부조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도전자와 같으나 대결과 싸움 대신에 떠남을 택하는 측면에서 그와는 다릅니다.
망명자의 한 가지 중요한 유형이 '정신적 망명자'입니다. 정신적 망명자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주어진 사회에서 편안히 살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것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라고 느낀답니다. 그는 비록 자신이 사회를 실제로 떠나지는 않았지만 본질적으로 그 사회를 떠나있는 사람입니다. 싸움과 대결을 택한 체제도전자와는 달리 정신적망명자는 참음과 기다림속에서 자신의 일종의 체념적 태도와 양심 사이의 갈등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떠돌이 역시 자신의 사회가 썩었고 부당한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양심이나 개인적으로 신봉하는 원칙에 대한 긍지와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롭게 살지 못한 질서에 도전하거나, 정신적으로 혹은 실제적으로 그 사회를 떠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일을 방해받지 않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그가 보기에 사회란 별다른 의미없는 귀찮은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위해 그는 어떤일도 사양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일에서 어떤 개인적 성취감이나 사회적 의미를 느끼지도, 느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체념속에 함몰된 존재라고 볼수있습니다.

 

제가 대학교때 읽은 책에서 나온 내용입니다만, 지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여러부류의 성격을 지닌 정치성향을 대입해보면 어느정도는 가닥이 잡힐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더불어 이러한 성향을 파악하고 또 성찰해볼수 있는 자기검열을 통해 유시민이 얘기하는 선의의 연대를 우리 시민광장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검토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대한민국 젊은층 대다수가 떠돌이로 살아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겨 본 경험도 없고 독재시절을 경험한 세대도 아니며 가치관에 대한 교육이 전무한 상태로 입시위주의 전형적 교육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사회가 썩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바꾸려는 태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못한체 살아온 환경과 습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자리 하나에 오열을 하며,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빌려 그들은 정치에 대한 의사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를 자극한 사람이 우석훈이라는 분이지요? 얼마전 그분의 강연을 보니 제가 보기에 그는 망명자라는 냄새가 강하게 풍겨왔습니다. 역시 유학파 출신답게 모든 화두가 경제더군요. 그는 태연하게 그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이 나라가 앞으로 강남 기득권이 움직이는데로 흘러나간다에 천만원을 건다라고 말이죠. 우리 스스로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부분들이 이런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민주화 운동권 즉 386세대들의 양갈래로 정치적 망명자와 체체도전자들을 무수히 탄생시켰습니다. 가장 질 떨어진 상태로 변모한 하수인들도 몇몇 보입니다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앞으로의 선의의 연대에는 이러한 두 부류의 극렬한 엘리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옳바른 시민주권 시대를 열어나갈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특정 부류를 비판을 하겠다는게 아닙니다. 어차피 나라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누구를 비판 하겠습니다. 제가 객관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니 이점 유념하시고 읽어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시민이라는 주인의식이 태동되던 시기는 노무현 대선 이외에 전무했었던 사실들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선의의 연대라는 함축적 의미가 강하게 있을테니까요. 노무현은 서민들의 세상 말 그대로 사람사는 세상을 얘기하며 개혁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사회주의 하겠다고 얘기한거 아닙니다. 대개 노무현은 그가 얘기하던 시민주권의 새로운 정치지형을 이 척박한 옥토에 실현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뜻에 동참하던 시민들이 시민의 주권의식을 내버리고 체제도전자와 망명자의 틀에박힌 이론과 담론적 틀로 지난 우리 정치사를 곪아오게했던 하수인과 백성들이 판을 치는 그런 정치 풍토로 변모시켰다는 느낌이 들고는 합니다.

 

이번 대선의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경제였습니다. 해법도 없이 중구난방식으로 로또를 바라는 심정으로 정치적 의사소통을 결정해버린 셈이라고 볼수 있을것입니다.
참여정부때 선의의 연대는 고사하고 그 지지층들은 배신감을 느껴 스스로가 하수인 혹은 백성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도무지 설명할수 없는 작금의 현실을 만들어내었던 것입니다. 촛불시위는 기존에 시민의식을 가진 노무현 지지층들이 이러한 현실에 환멸감을 느껴 도그마된 상태로 체제도전자로 탈바꿈하게된 성향이 큽니다.

더불어 망명자와 기존의 체제도전자들의 특권의식이 이러한 정치지형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격고있는 홍역을 치유해내기가 힘이 듭니다.

말 그대로 시민이 주권의식을 가지고 합리적 의사소통이 필요한건데, 언제 어느 한 순간 어떠한 정치성향으로 탈바꿈할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고단한 정국이 불안해 보일수밖에 없는것입니다.

 

저의 해법은 지금의 백성에 위치란 여러 부동층에게 주권의식을 만들어줄만한 어젠다가 다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더불어 젊은 떠돌이 층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도 조금은 다각적인 기호에 맞게 그 개개인성을 인정해줄수있는 정치적 어젠다가 필요하겠죠.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층들을 다시 시민의 입장으로 돌려세우고 거기에 체제도전자와 연계할수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것과 또한 망명자들의 비판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정치지형에 승리할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무현이 왜 퇴임후에 시민의 길을 택해 연단에서 강연을 하고 있겠습니까? 유시민이 왜 밑도끝도 없이 헌법을 들고나와 결국에는 선의의 연대를 말하고 있는거겠습니까?  달리 말하면 동기 부여라는 것이겠죠?

 

어쩌면 시민이라는 개념은 우리 정치사에서 찾아볼수 없었던 리버럴한 개념이였습니다.
이러한 생소한 개념으로 탄생한 참여정부는 기존에 봉건적 잔재의 아우라가 지배하고 있었던 대한민국 사회와 필연적으로 싸울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정부였을것입니다.

 

그래서 시민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거 많은 사람들이 백성의 입장으로 돌아서 버리게 된것입니다.

 

이 나라 언론은 뭐니뭐니 해도 하수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수있는 점은 그들에게는 하수인들에게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환상같은게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식민의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박정희의 신화에 머물러 있는것입니다. 우리들의 공공의 적은 바로 이런 부류들입니다. 거기에 움직이는 지지층이 족히 30%나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 사회에 암적인 존재라는 사실들을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 도취되어 사회가 썩었건 어쨌건 그 사회를 좋으나 싫으나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 심각한것이지요. 과연 이런 지지층들과 대화가 되겠습니까?

 

제일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진짜 좌파라는 사람들은 체제도전자와 망명자가 뒤섞여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 전략적 판단을 하지못하고 주구장창 딴소리나 읊어가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상태로 머물어 있는거겠죠.

그들과의 연대를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선의의 연대에 아마 동참하기 힘들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포용한다해도 그들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쩔수없이 비판적 지지 혹은 그들이 바라는 세상의 기준들을 하수인들층과 가치대결을 시킬만한 묘책이 필요합니다.

 

민주당 구주류들을 지지하는 층들은 대개 시민, 백성, 그리고 하수인층들이 뒤섞여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정동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의 하수인들로 변해버린 모습들입니다. 역시 환상이죠? 무조건 대통령만 시키면 된다라는 환상이 바로 그런것들이겠죠.

그러나 이길수가 없습니다. 극소수의 체제도전자 층들의 비판적 지지는 고사하고 망명자들에게도 그들은 어필하지 못합니다. 떠돌이 층들에게는 이해될수없는 정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통이 꽉 막혀버린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가혹하게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하는것입니다.
그들에게 포진되어있는 백성들을 시민으로 탈바꿈 시킬수있는 방법 이외에 어설픈 연대는 더 큰 화를 자초할수 있습니다.

 

물론 시민층들도 어느정도는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그들에게 존재하는것이지 얼마든지 우리 세력이 마당을 깔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 세력을 우리의 지지층으로 변화시킬수 있을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말 그대로 정치적 어젠다가 필요합니다. 실질적으로 현 정치풍토에 반영될수 있는 그런 선의의 연대가 필요한것이지요. 지금 진보 민주진영의 세력을 총괄하는 화두는 망명자 혹은 체제도전자들의 엘리트 의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반 이명박의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기에 정동영을 지지하는 하수인들이 사태파악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 더 큰일입니다.

 

이래서는 백날 해봐야 똑같은 현상만 나옵니다. 그래서 유시민을 대표선수로 길러내어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일단 그는 떠돌이 층을 품을수 있습니다. 리버럴한 특성이 바로 그런거예요. 몇몇분들이 그런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개인화되고 익명화되는 세상속에서 우리의 젊은층등은 떠돌이 층으로 살아나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필할수 있는게 개인주의 일것입니다.

체념속에 함몰된 상태를 지닌 떠돌이층들에게 개념을 잡아주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개인주의밖에 없습니다. 전 진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들이 시민의식을 지닐수있게 동화시켜 나간다면 젊은 세대들의 자발적 참여는 가능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움직여낼수 있는 유시민의 시민주권 화두는 진정 탁월한 스탠스입니다.

 

솔직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헌법을 보나요? 안 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노무현 층들을 일으켜 세운 층들은 백성과 시민을 넘나들고 있는 측면이 크고 또한 몇몇 부류들은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미 하수인으로 돌아서버린 이상한 부류들은 포기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함부로 품을 필요가 없습니다.
간혹 이 사람들과 우리들이 뒤섞여보이는 상태가 진행 될수 있겠지만 분명 우리와 끝까지 싸워야할 대상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통용되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유시민은 그렇게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현실적으로 시간이 많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지역성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역패권 그리고 그 패권의식에 상반된 지역 피해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하수인들 층이고 또한 그 하수인들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80년대식의 사고로 망명자의 길을 택한 자나 또한 체제도전자가 되어왔던 사람들의 비전략적인 정치행태를 진지하게 살펴주어야 합니다.

 

하여 우리는 죽으나 사나 시민주권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가치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렇게 젊은 세대의 방황을 우리가 인정하고 품어 나갈때 우리들의 세상은 올것입니다.

 

유시민이 말한 선의의 연대는 시민이 주인되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노무현의 철학이며 가치입니다. 노선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선은 얼마든지 이러한 시민주권 시대가 만개한 이후에 그 구성원들의 진로의식에 수정될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판단 이외에 하수인들을 이길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유시민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시민광장에서....初雪님에 글